2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2001년의 여름과 2002년의 봄사이의 나는 8년을 사귀었던 사람과의 이별에 대한 추모의 시간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위한 '쉼표' 였던것 같아.
동갑으로 대학 일학년에 만나 대학4년 그리고 ROTC 군생활 2년반을 하는동안 9급공무원에 합격해 내가 제대를 하면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할꺼라는 기대를 했던 사람에게 취직대신에 대학원을 선택한 내게 치쳐버렸던것 같아.
지금에서 솔직히 말하면, 입학할때나 졸업할때 많이 열려있던 건축관련 취업자리가 군제대를 하고 사회에 나온 1999년은 IMF가 막 지나간 시기에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 되어 있었고, 이상과 현실의 큰 격차를 느끼고 취업을 미루는 수단으로 대학원을 선택했던것 같다. 1999년 6월,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처음으로 아무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내가 존재한다는 충격은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대학원에 들어가 두번째 학기때 헤어진걸로 기억되는데.. 1996년 겨울, 군입대를 앞두고, 혼자 50일정도 다녔던 유럽배낭여행을 통해서 유학에 대한 갈망이 있던 내게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 정착하기를 원하는 사람과의 갈등이 있었고, 내가내린 결론은 6개월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오자. 그걸로 내 갈망을 채우고 정착을 하자가 내 스스로 내린 타협이었어. 하지만 상대방에게 말하기가 어려워 바쁘다는 핑게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몇개월 소식을 하지 못하고 난 그동안의 사진을 정리하며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지인을 통해 그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소위 맨붕이 되어 찾아가 만나고 갑자기 이별을 당하게된 경우라 내적 타격이 좀 컸던것 같아. 결국 대학원 일년 지나고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하게 되었지.
지금 생각하면 어학연수가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일단 결혼이라는 이유로 헤어져 되돌릴수 없었지만, 같은 공간에 있었다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것 같아.
내가 원했던건 유학이었지만, 그 사람과의 헤어짐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어학연수의 시간은 스스로에게 자책을 많이 했던 시간이었던것 같다.
또한 처음에 들었던 상대방에 대한 원망, 억울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로인해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던 그의 선택을 인정해야만 했던 마음이 되었고..
그래서 나는 어학연수에 와서 열심히 살아야 했고 뭔가 몰입을 해야 했다.
홈스테이에서의 생활은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많은 경험을 주었고..
학교에서의 생활은 원래 못하던 영어와 내성적이 성격으로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었고..
종교단체 활동은 재미는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볼수 있었고..
혼자 노트북들고 24시간 여는 학교 도서관에서 '칼럼'이라 불렸던 초기 다음 블로그에 몰입하며.. 미국대학생활의 맛을 보았고..
여러 여행이 내게 많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타호 스키여행, 그리고 노래방에서 미친듯이 소리지르며 놀았던 것들이 내게 '자유'로 기억되었고 '치유'가 된것 같아.
그런 기억들이 쌓여 옛기억을 밀어낼수 있었고..
결국 그후..
대학원으로 돌아가 유학준비를 하며 졸업논문을 쓰고 졸업식을 참석하지 못하고 유학을 와서 20년을 살게 되었네..
가끔.. 싸이&아이유의 '어땠을까' 노래를 들으며 울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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